주변에 강대국이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좋은 자극제이며 치열한 경쟁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성적인 침략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주변에는 그리스, 로마, 바벨로니아, 페르시아, 앗수르, 이집트 등 최강의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직접 이스라엘을 침략하기도 했고 강대국들끼리 서로 각축하면서 이스라엘을 전쟁터로 삼거나 각자 편에 줄 서도록 강요하며 유린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강대국들의 패권 주의에 휘둘린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제나 전쟁의 역사였고 치열한 국제 정세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혼란하고 불안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성들의 열망은 언제나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에서 평화시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20절)고 합니다.
1. 비극의 시작-하나님 없는 야합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대는 요아스가 왕이 될 때였고, 그때 요아스의 나이는 겨우 7세였습니다. BC873년에 즉위하여 25년간 재위했던 여호사밧은 매우 믿음이 좋고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었고 믿음의 기도로 국난을 극복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치명적 실수 한가지가 있었는데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정치동맹을 맺은 일이 그것이었습니다.(왕상 22:44) 그때 여호사밧은 두 왕국 사이의 관 계 개선을 위해 아합의 딸 아달랴를 그의 아들 여호람과 정략결혼을 성사시켰습니다. 여호람이 8년을 재위하는 동안 아달랴는 친정국인 북 왕국에 만연했던 바알 숭배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유다 왕국과 백성들을 타락시켰습니다.(왕하 8:18) 그 후 여호람 왕이 죽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지만 1년 집권 뒤 사망하자 아달랴는 이 혼란기를 틈타 다윗의 직계 후손들을 모두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6년을 통치했습니다. 이때가 유다 왕국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모든 다윗의 혈통들을 전멸시킬 때 살아남은 왕자가 있었는데 그가 요아스였습니다. 모든 왕족들이 죽임을 당하던 날 제사장 여호야다 부부가 요아스 왕자를 빼돌려 6년을 몰래 키웠습니다. 요아스가 7살이 되자 여호 야다 제사장은 측근들과 함께 거사를 일으켜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 를 왕으로 추대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나라 안에 즐거움과 평화를 회복했습니다.(왕하 11장)
당시 여호사밧도 아합도 모두 성공적인 통치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이 손잡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매우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동맹을 구축하면 역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 되심을 거역하는 인본주의적 생각입니다. 그래서 잠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하 셨습니다. 동맹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 능력은 질그릇 같은 인생에게 있지 않고 질그릇에 담긴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여호사밧과 아합은 평화를 위한 연합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을 배제한 이 동맹은 평화 대신 역사상 가장 참혹한 폭력과 패륜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가 주인이시며 그가 능력이시며 그가 역사의 목적이십니다.
2. 희망의 시작-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
이 혼란의 역사를 즐겁고 평온한 역사로 만든 중요한 인물 가운데 여호야다라고 하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아달랴의 반역이 있었을 때 이미 그의 나이가 90세가 넘었을 때였습니다. 고령의 제사장이었지만 그는 국가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지도자가 됩니다. 아달랴가 다윗의 모든 자손들을 학살하던 날 여호야다 제사장은 부인 여호세바를 통해 요아스 왕자를 빼냅니다.(대하22:11) 그리고 6년 동안 성전에 숨겨 키우다가 요아스가 7세가 되었을 때 용병들을 동원하고 전국에서 의거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성전 호위병들을 설득하여 아달랴를 축출하고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어린 왕을 잘 보필하여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 되도록 했습니다.(왕하 12:2) 여호야다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 하여 요아스를 옹립한 근본적인 동기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성전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을 섬겼던 충성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유다 왕국이 가진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입니다. 역사가 혼돈과 무질서와 부도덕에 빠졌을 때 여호야다라는 한 노인 제사장이 희망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에 자기 몸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를 새롭게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살아가도록 돕는 자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평온을 주실 것입니다.
3. 즐거워하고 평온한 은혜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17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그렇게 원하던 왕국을 건설한 후 평화롭고 번성하는 나라 되기를 꿈꾸었 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늘 불가능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존재 자체가 불안정 했고 근본이 흔들렸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므로 나라 안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졌습니다. 안으로는 불안과 공포가 넘치고 외부적으로도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은 성경에 여러 차례 반복된 하나님 언약의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는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스스로 깨뜨렸습니다.
여호야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회복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은 즐거워하고 나라 안은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누가 왕이 되었는가도 중요하 지만 왕이 된 그가 무엇을 행하였는지를 성경은 더 세심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는지, 하나님께 순종했는지,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지도자였는지를 성경은 숨김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신앙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되찾고 순종하고 지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겁고 평온한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