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주님께 맡겨 벗어버리고 우리가 가야할 믿음의 길을 홀가분하게 걸어갈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길 떠나는 사람은 눈썹 하나라도 더 뽑고 출발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혼의 짐도 가벼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신앙인의 삶을 농부, 군인, 경주자에 자주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는 종종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권고합니다. 빌3:12에서도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생의 종점에서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도 십자가라는 목표점을 향해서 전력 질주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에 대한 헤롯의 암살 음모를 알려주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하시면서 경주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장엄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한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끝에 설 때 비로소 우리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하며 경주를 마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인이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에 대해서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생각하라’(2절)고 가르칩니다.
1. 무거운 짐을 벗고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릴 수 없고 온 몸이 얽매인 채 달릴 수 없는 것처럼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무거운 것이란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의미하는 것이요 얽매이기 쉬운 죄는 그 무거운 인생 짐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히 11장에는 믿음으로 살아간 선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겼고 허다한 죄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총을 믿고 회개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인생 짐이 무거워 견디기 힘들고 지난날의 죄가 발목 잡을 때마다 회개하고 기도하며 날마다 우리 짐을 대신 지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린 더 완벽한 표본으로 예수님을 제시하며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단호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고 부모의 장례를 걱정하는 자에게도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지나치게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짐이 더 무거워지고 얽매이는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수입과 각종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편리한 여러 기계들의 도움을 받으며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첨단의 삶을 살면서도 마음은 더 무겁고 삶이 더 힘들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욕망 상승과 사회적 갈등의 폭증과 정신력의 빈곤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주님께 맡겨 벗어버리고 우리가 가야할 믿음의 길을 홀가분하게 걸어갈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길 떠나는 사람은 눈썹 하나라도 더 뽑고 출발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혼의 짐도 가벼워야 합니다. 좀 더 버리고 좀 더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짐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죄의 굴레들도 모두 십자가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더 의지하면서 담담히 주님을 따라 우리 갈 길을 가야 합니다.
2.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셨습니다.(마26:67) 사람이 당하는 고통 중에 멸시와 모욕과 조롱은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수치심과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이것은 존재와 삶의 의지를 꺾는 악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극한의 인내심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에는 구약의 모든 것과 비교하여 예수님께서 얼마나 월등하신지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구약이 그림자라면 예수님은 그 실체이시다’라고 증거합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인격의 탁월함이 증명되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다른 유대인들보다 더 신뢰할만하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과 윤리 두 가지가 다 요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합리적 노력을 전력을 다해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신의 노력을 진정으로 기울였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지속적으로 가문에서의 파문, 고향 마을에서의 추방, 경제 활동의 제약, 지식인 사회와 유대인 지도부로의 진출 등이 거절당했고 견딜 수 없는 모욕적인 처사들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논리적으로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지를 설명하고 성도들에게는 어떤 모욕과 조롱을 당하고 수치를 당해도 견디고 참아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 주님도 먼저 수치를 당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먼저 매 맞고 그가 먼저 침 뱉음을 당하고 그가 먼저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주님의 늠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표본 삼고 오늘의 어려움을 이기라는 것이 말씀의 주제입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주님은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바라보며 따르는 이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우리 갈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3. 낙심하지 말아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할 일 많지만 끝까지 인내하여 승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지치고 쓰러지고 낙심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연약하고 시험 들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주님께서 잡히시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들고 저항했습니다. 주님은 이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주님은 당장 하늘의 12군단 천사를 동원하여 이 모든 상황을 한순간에 정리하실 수 있으나 거역하는 자들에 대하여 끝까지 참고 묵묵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의를 행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권력과 물질과 지식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능력이요 신비한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새 힘으로 도우실 주님을 앙망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완주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