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교회
교회소식
설교영상
예배시간
오시는길
주보/순례자
 
> 교회소식  
기독교, 꿈꾸는 청년들을 품다!
 보통 ‘한국의 기독교인이 언제 폭발적으로 늘어났을까’를 생각하면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전에 두 차례의 급격한 성장이 있었다. 1894년부터 1896년까지의 시기와 1905년부터 1906년 사이의 시기가 바로 이 급격한 성장의 시기이다. 장로교의 세례교인이 1895년 180명에서 1896년 2,000명으로 11배 이상 성장했을 정도로 이 시기 교세의 성장은 괄목할만했다. 그런데 1894년에는 청일전쟁이, 그리고 1904년에는 러일전쟁이 있었다. 전쟁이라는 위험이 교세 성장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교회는 민중의 피난처가 되었다. 청일전쟁의 격전지였던 평양에서는 교회가 피난민 수용소가 되었고 일본군이 서울에 진주했을 때 상동병원은 성조기를 게양하고 민중계층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였다. 교회와 선교 병원, 그리고 학교가 전쟁 중의 피난처로 인식되면서 민중계층이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 이는 교회가 전하는 복음보다 기독교의 배후에 있는 서구, 특히 미국의 힘이 버팀목을 찾고 있던 사람들을 끌어 모은 것이었다.
 서서히 엘리트 계층도 교회와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청년들은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나고 청나라가 조선에 미치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이 사라지자 조선의 자주독립을 꿈꾸며 독립협회를 조직했다. 독립협회의 창설을 주도한 이는 갑신정변의 주도자 중 한 명으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돌아온 서재필과 초대 주미한국공사의 비서관이었던 이상재, 그리고 통역관 윤치호였다. 그리고 이들 중 서재필과 윤치호는 미국 망명이나 유학을 거친 기독교인이었다.
 독립협회는 1896년 4월부터 ?독립신문?을 순한글로 발간하며 자주의지와 근대적 시민사회 형성을 향한 열의를 표명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 주시경, 윤치호와 같은 조선 기독교인과 아펜젤러와 헐버트 선교사가 상황에 따라 서로 협력하며 발행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청나라 사신들을 영접하던 곳으로 사대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던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축하였고 바로 옆에 있던 청나라 사신들을 영접하기 위한 관문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개선문을 본뜬 독립문을 건립했다.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자주국가 건설의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조선 왕실도 이를 기뻐하며 지원하였다.
 독립협회의 활동은 충군애국에 입각한 계몽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가 점차 새로운 정치제도를 요구하는 저항적 정치운동으로 변화했다.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열고 민중의 참정권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왕실을 비롯한 수구파 세력과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졌다. 독립협회에 참여하던 고위 관료들이 활동을 중단하였고 협회가 고종을 폐위시키고 윤치호나 서재필을 대통령으로 세울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수구파 세력에 의해 전국의 보부상이 동원된 황국협회가 조직되었고 독립협회와 폭력을 동반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결국 1898년 12월 고종의 명령으로 독립협회와 황국협회가 해산되면서 개혁운동은 중단되었고 독립협회 회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벌어졌다. 개혁적 청년들에 대한 검거는 1904년까지 이어졌다.
 독립협회 출신 청년들이 한성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언더우드와 벙커 선교사는 매주 주일마다 이들을 방문하여 위로하며 상담하였다. 아펜젤러, 게일, 헐버트 등의 선교사들은 성서와 기독교 서적, 교양서적 등을 감옥에 전달했다. 선교사들이 책을 계속 반입하자 한성감옥에 도서실이 생겼다. 청년들은 도서실에 비치된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기독교를 차츰 이해해갔다. 그리고 한 명씩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한국기독교 민족운동의 중심세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기독교인이 된 이가 이승만, 이원긍, 이상재, 유성준, 김정식, 홍재기, 안국선, 이승인, 신흥우 등이다. 이들은 출옥 후 독립협회에서 가졌던 근대 시민국가의 꿈을 계속 이어나가며 상동청년학원, 신민회, YMCA로 이어지는 한국 민족운동과 시민운동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다. 한국기독교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청년들의 가슴에 불어넣고 그 꿈이 꺾일 위기에 처했을 때 젊은 몽상가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교회는 꿈꾸는 사람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꿈꾸는 곳이다.

관련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