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는 스데반의 죽음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박해를 당한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 거주가 불가능해진 성도들이 피난길에 나섰고 그들 중 일부가 안디옥에 정착하여 함께 예배드리기 시작하면서 안디옥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다가 다음으로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므로 안디옥 교회는 자연스럽게 이방인 선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였고 이들이 열방을 향해 복음을 전파함으로 기독교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박해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떠난 피난길이었지만 사람으로서는 계획할 수도, 상상도 못할 일들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이루어졌습니다.(21절)
성경에 주의 손이 함께 했다는 표현이 13차례나 등장하는데 신비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할 때 항상 ‘주의 손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시 92:4, 눅 1:66)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차원을 훨씬 넘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과 그의 능력으로 친히 주관하시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오늘도 우리 삶과 역사에 친히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환난의 역사가 선교의 역사로
예루살렘에 교회 역사가 시작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직후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120여 명으로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는 3천여 명의 세례로 이어졌고(행 2:41) 후에는 ‘남자의 수가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고 했습니다.(행 4:4)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행 6:7)
당시 사람들은 교회가 이런 속도로 성장한다면 수개월 내에 예루살렘의 복음화가 성취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대적인 유대교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성도들에 대한 대규모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고 교회는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더 등장합니다. 이것은 전환기의 위기로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였고, 이 사실이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이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고 하면서 이방인
의 구원을 인정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행 11:18) 유대인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편협하고 폐쇄적인 선민사상에서부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전환해 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전환기의 또 다른 모습은 중심인물의 교체입니다. 초대교회 중심인물은 단연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이르러 사도 바울이 등장하고 이후로는 바울 중심의 교회역사가 전개됩니다. 전환기는 매우 불안정하고 조심스럽고 위험한 시기이지만 안디옥 교회는 이 과정을 매우 안정적으로 잘 극복해 냈습니다. 그 결과로 안디옥 교회는 외적으로도 큰 성장을 했고, 개개인의 신앙도 매우 성숙해졌습니다.(21, 26절)
이후로 바나바와 바울은 온 세상을 복음화하려는 거대한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환난과 박해 그리고 분산과 시련의 파도를 넘었고 전환기의 위험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위대한 역사가 ‘주의 손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역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바나바의 지도력
초기 안디옥 교회를 형성했던 예루살렘의 피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그는 구브로 태생으로 레위인 출신의 정통 유대인이었지만 복음을 접하고는 예루살렘 교회의 열정적 성도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 선정되자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안디옥으로 가서 사역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 그는 교회를 든든하게 세웠을 뿐만 아니라 박해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만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매우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바울이 박해자 사울로 살다가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그를 냉대하고 의심했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사도들에게 일일이 소개하고 예루살렘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감당하면서 바나바가 보여준 태도는 언제나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바울과의 갈등이 생기자 순순히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부터는 바나바의 이름이 더 이상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3. 가난한 피난민들이 선교의 주역으로
주의 손이 함께 하였던 사람은 비록 바나바뿐 아니었습니다. 바나바 보다 더 위대한 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간 초기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본문 19절은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이후 대대적 박해가 예루살렘 교회에 닥쳤고 성도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의 삶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들은 ‘교회는 우리가 지킬 터니 여러분들은 피난을 가라’고 하여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이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보호받을 수가 없었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서 신변의 위협과 가난의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은 예수 위해 살다가 예수 위해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셨고, 그러면서 그들에게 놀라운 변화들이 생겨났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기도와 금식으로 주님을 섬기면서 성령의 명령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헌신케했습니다. 선교역사가 스테판 닐은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바울 일행이 탄 배가 마게도냐를 향하는 순간 세계 문명의 중심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졌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들, 예수님 위해서라면 자기 온 삶을 드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던 안디옥 사람들, 그들은 비록 가난하고 무력하여 세상에서는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당했지만 그들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시면서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한 결실을 보게 됩니다. 환난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 성장을 위한 과정이 됩니다. 하나님의손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은 하나님 뜻을 이루는 귀중한 사역자들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을 점점 더 깊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