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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과 평양의 대부흥
 교회사에는 대부흥운동이라 명명되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굵직한 대부흥운동이 전세계에서 발생했다. 영국, 미국, 웨일즈, 아일랜드, 인도, 한국, 호주, 만주 등지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이중 미국과 웨일즈, 한국의 사례를 대부흥이라 부른다. 우리는 흔히 부흥을 교세의 성장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흥 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꼽으면 교세의 성장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대부흥의 핵심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에 있다. 따라서 대부흥운동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통렬한 죄의 고백, 감정적인 고양, 도덕성의 회복, 영적 각성 등이라 할 수 있다. 교세의 성장은 교회의 변화에 따른 부수적인 일이다.
 한국에서는 1907년 평양에서 장로회 중심으로 퍼져나간 평양대부흥운동이 유명하지만 가장 먼저 촉발된 대부흥운동은 1903년의 원산대부흥이다. 캐나다 출신의 의료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는 장로회와 감리회의 선교사들과 함께 1903년 8월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성경공부를 겸한 기도회를 가졌다. 기도회를 인도하던 하디는 성령 충만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한국인을 무시하고 태만하게 사역하였음을 깨닫고 자신의 교만과 나태를 회개하였다. 그는 자신의 선교가 열매를 거의 거두지 못한 것에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성령의 도움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디에게서 시작된 죄의 고백이 점차 한국인들에게 퍼져나갔다. 많은 신자들이 회심을 경험하였고 성령의 능력과 은혜 속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1904년에도 롭(A. F. Robb) 선교사가 인도하던 집회에서 선교사 자신이 하디와 유사한 영적 체험을 하였고 집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흐느끼면서 통회자복하였다.
 원산의 대부흥 소식을 들은 평양의 선교사들은 1906년 8월 하디를 사경회의 강사로 초청하였다. 선교사들은 사경회를 통해 평양에서도 교회의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고대했다. 서서히 분위기가 무르익어갔고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있었던 겨울 남자 사경회에서 평양대부흥이 폭발했다. 14일 월요일 저녁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블레어(W. N. Blair) 선교사가 고전 12장 27절을 읽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지체들이라”는 설교를 한 후 리(Graham Lee)가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통성으로 기도하자고 하자 공개적으로 죄를 회개하는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비틀거나 울면서 바닥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15일에도 공개적인 회개가 줄을 이었는데 살인, 간음, 증오, 애정결핍 등의 차마 공개할 수 없는 죄들이 고백되면서 선교사들이 놀랄 정도였다.
 평양대부흥의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대부흥의 물결이 번져가면서 신자들 사이에 크게 2가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신자들의 윤리적 의식이 성장한 것이다. 살인과 간음, 절도, 거짓말같이 기존의 죄에 더해 축첩, 노비, 제사, 주술 등 이전에는 죄로 보지 않던 것들도 새롭게 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인식된 죄들은 사회문화와 제도, 윤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 신자들은 한국의 문화와 제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비판할 수 있는 윤리적 안목이 생긴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성령체험을 하게 된 신자들이 비로소 신앙인이 된 것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처음 전파될 때, 사회적 엘리트들은 민족의 부강과 자유 독립을 위해 기독교에 입신하였고, 민중계층은 탐관오리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기 위해, 그리고 정말 가난했던 이는 먹을 것을 준다는 소문에 교회를 찾아왔다. 어떤 신자들은 노골적으로 교회를 나오는 댓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독교의 가르침보다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이런 신자들을 선교사들은 쌀교인(Rice Christian)이라 부르며 깊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성령체험은 한국인이 비로소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깊이 맛보고 깨닫는 사건이었다. 하나님을 머리로만 납득하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만나게 되면서 종교 본연의 깊이에 한국인들이 도달하게 된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은 성경공부와 기도에 열심인 한국교회의 특징이 자리잡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교회가 침체되고 갈 길을 잃을 때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푯대로 우뚝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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