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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의 정착
 한국교회는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교파나 지역, 그리고 개교회의 문화 등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주여 삼창’에 이은 통성기도는 한국교회의 특색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다. 또 외국의 교회들에 비하면 기도모임 자체가 자주 있다. 그중 거의 매일 새벽마다 열리는 새벽기도회야말로 한국교회가 가진 기도의 열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새벽기도회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으로는 1898년 2월 황해도의 강진교회 겨울 사경회에서 있었던 새벽기도회가 최초이다. 이 사경회의 강사로 참여헀던 선교사들의 보고서에 ‘아침 해가 올라오기 훨씬 전에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하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린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보면 새벽기도회는 선교사들의 제안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 신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출발하였던 것 같다. 이후 여러 지역의 사경회에서 비슷한 새벽기도회가 때때로 있었다. 1901년에도 사경회를 인도하던 선교사가 새벽 4시에 한국인 신자들이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는 보고서를 썼다.
 새벽기도회가 처음으로 정식 순서가 된 것은 1903년 12월 31일부터 2주간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평양지역 사경회이다. 이 사경회는 기도의 필요를 느끼는 참석자들을 위한 공식 순서로 새벽기도회를 운영하였다. 당시는 러일전쟁 이후 국가의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벽기도회에서는 개인적 간구와 함께 교회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드려졌다. 그 밖에도 1904년 이화학당 학생들의 사경회와 1905년 송도의 부인사경회에서도 새벽기도가 있었다.
 이 시기의 새벽기도는 사경회 기간에만 1-2주 운영되는 한시적인 기도회였다. 이 새벽기도회가 교회의 장기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1909년의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달이 넘는 장기 프로그램으로 새벽기도회를 처음 도입한 것도 장대현교회라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사경회의 공식순서로 새벽기도를 운영한 것도, 또 처음으로 사경회 참석자가 아닌 교회 전체 교인의 장기 프로그램으로 새벽기도회를 운영한 것도 모두 장대현교회이다. 교회 사학자들은 이렇게 장대현교회가 새벽기도의 역사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당시 장대현교회의 장로였던 길선주 목사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길선주 목사는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도교에 심취했었다. 그는 도교식 수련을 통해 초인적인 능력을 얻고 ‘도인’의 칭호를 얻었던 사람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 때문에 피난을 갔다 1896년 평양에 돌아온 길선주는 같이 도교 수련을 하던 친구 김종섭이 기독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보다 영혼의 깊이가 깊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김종섭의 전도를 받아 도교의 신인 상제에게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인지 묻는 기도를 ‘예수의 이름으로’ 하던 길선주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도교의 신에게 기도하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만난 독특한 사례이다.
 그리고 평양에는 길선주 같은 도교 출신 신자들이 꽤 많았다. 다음은 언더우드가 만든 찬송가인 <찬양가>(1894)에 수록된 이래 1890년대에 널리 불렸던 한국인이 만든 찬송가의 가사다.
 “하늘엔 곤찬코 장생불로, 신체가 쾌하야 장생불로, 괴롭고 힘들어 세상사람 짐졌네, 하늘엔 즐거워 장생불로”
 기독교의 영생을 도교의 개념인 ‘장생불로’로 바꿔 부른 이 찬송은 이후 기독교의 영생과 도교의 장생불사 개념이 다르다는 기독교 언론의 지적을 받으며 사라져갔다. 교회사 학자들은 도교 출신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도교적 영성의 기독교화가 일어났다고 보고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 역시 도교와 무속의 새벽기도를 기독교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속에서 새벽에 정한수를 길어 천지신명에게 치성을 드린 것과 도교 수련법의 하나인 칠성신 새벽기도가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하시던 습관과 융합되어 새벽기도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가 전통종교의 형식을 빌려온 측면이 있더라도 그 기도의 내용은 확연히 달랐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소원만을 빌었던 무속과 도교의 새벽기도와 달리 기독교의 새벽기도는 교회와 민족공동체를 위한 기도로서 공공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길선주 방법’이라고도 불렸던 새벽기도회는 백만인구령운동과 함께 전국으로 확산되어 한국교회 전체의 기도회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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