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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행 22:1-11)


 지난 수년간 한국교회의 상황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많이 변했습니다. 우선 한국 사회 전반의 교회를 향한 시선이 냉담하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냉담한 시선은 한국교회가 과연 한국 사회의 발전에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언제나 세계 교회 앞에 부흥과 성장을 자랑하던 한국교회였는데 급격한 교인 감소현상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그리스 도인들의 더 깊은 믿음일 텐데 그럼에도 우리의 영적 자세는 오히려 현저하게 세속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주여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는 탄식과 질문이 터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영적 치유와 회복을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 ‘어떻게 한국교회의 재부흥 운동을 견인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것인가’라는 과제 앞에 서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생의 마지막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예루살렘행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만류할 때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사명을 위해 결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행 20:23-24)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두 주간이 채 못 되어 유대인들의 반대시위와 살해위협에 직면했고 그를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손에서 로마군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그는 로마군 천부장의 허락을 받고 주위에 몰려든 유대인들에게 자기 입장을 변명하는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본문이 그 내용의 일부입니다.

 1. 자기 절망의 절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철저한 유대교의 바리새파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자신과 가문 그리고 민족을 위한 최선의 길이고,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충성으로 여겼습니다.(3-4절) 그는 하나님께 충성 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고 교회를 잔멸하기 위해 광란의 질주를 계속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행 9:1)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의 길을 주 예수님께서 가로막으셨습니다. 영광스러운 강력한 광채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은 그의 가는 길을 멈춰 세우시고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추 궁하셨습니다. ‘주님 누구십니까?’라는 그의 화급한 질문에 ‘나는 네가 박 해하는 예수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자기 신앙과 소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누구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살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거역한 것임을 발견했을 때 바울은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 야 합니까?’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런 바울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래 너는 끝난 인생이다, 죽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망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새로운 삶을 위해 일어나 갈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일생의 모든 노력을 다해 하나님께 충성하고 민족을 위한 최선의 노력으로 해온 일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악한 일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는 절망하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라 새 일을 계획하고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희망의 사과나무를 심으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그 무엇 때문에라도 실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2. 인생 목적의 재점검
 예수님은 절망하고 절규하는 바울에게 일어나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다메섹은 본래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기 위해 가려고 했던 장소입니다. 이처럼 바울에게 가던 길을 가라고 하시는 주님은 대신 다메섹으로 가는 목적을 바꾸라고 하십니다.(행 22:14-15)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바울의 질문에 주님은 ‘네 인생의 목 적을 바꾸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흔히 ‘예수 믿으면 새로워진다’고 말합니 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 것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면이 새롭게 되고 영혼이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 것이 되는 결실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관계의 변화이고 둘째는 목적의 변화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왜 사는지의 목적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한 바울은 인생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기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는 것"(행 20:24)이라 했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전 10:31)고 했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인생의 목적을 바꾸었고 실제로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았습니다.

 3. 자신감보다 비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역설했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습니다. 이런 바울을 보며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은 당혹해했습니다.(행 9:20-22) 바울은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유대인 전도를 위해 최적의 조건으로 준비된 사람이었고 자기 민족의 구원에 대하여 불타는 마음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롬 9: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하셨습니 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판단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 생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전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신이나 꿈을 절대시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일생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전을 먼저 깨닫고 이 일에 자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주님 섬기는 일을 위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3장) 교회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두 사람을 선교사로 안수하고 파송하여 이방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비전에 헌신했습니 다. 이런 순종과 헌신은 기독교의 세계화를 불러왔고 세계 문명사를 획기 적으로 새롭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고집과 자기 신념과 인간적 가치 판단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생각과 다를지라도 그 뜻에 순종하도록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때 주님은 인생 목적을 하나님께 두라고 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때 주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우리 삶을 존귀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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