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령’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의 진전 이나 사물의 발전 과정에 있는 결정적인 고비 또는 전환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기본 어원은 ‘근원이 같은 물이 두 줄기로 갈라져 흐르기 시작하는 산마루나 산맥’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인생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삶의 내용에 극적 전환이 이루 어지는 분수령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욥이라는 매우 특별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욥은 당시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고 기업인이었으며 경건한 신앙인이었고 매우 합리적인 사회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사탄의 계략으로 엄청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갑자기 스바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 가축들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습니다. 자녀들은 몰사 당하고 온몸에는 종기가 생겨 진물이 흘러 그는 재속에 앉아서 깨어진 그릇 조각으로 상처를 긁어야만 하는 극심한 고통에 빠졌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고 악담을 하고 그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은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과 수군거림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욥에게 숨 겨진 죄가 있어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속단하고 비난했습니다. 그의 명예는 땅에 떨어 지고 영광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욥에게 마침내 갈등과 고민이 끝나는 시간이 왔습니다.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삶이 새로운 회복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 시간은 욥의 인생의 분수령이었습니다.
1.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욥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극심한 고난의 경험자이며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고통이 너무 힘들어서 항변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5절) 욥은 모든 것을 상실했지만 오직 한 가지 신앙을 얻은 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는 신앙은 이론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주님을 뵙는 신앙은 하나님의 실존과 임재를 체험하는 신앙입니다. 신앙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신앙의 체험입니다. 이런 노력이 발전하여 신학이 되고, 변증학이 되고, 선교를 위한 논리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이론에만 집중하는 신앙이 되면 공리공론이 되기 쉽고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 의식은 강화되지만 자기 성찰은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 남입니다.
욥은 고난을 당하는 동안 계속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치열 한 논리 공방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논리에 붙잡혀 괴로움의 현실을 벗어 나지 못하는 욥을 찾아오셨습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2) 치열한 자기 논리로 논쟁한 그에게 하나님은 ‘무지 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라고 혹평하셨습니다. 이에 욥은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라고 실토했습니다. 신앙은 우리 논리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역사하심은 우리의 논리를 훨씬 넘어서는 초월적이며 우주적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뵙는 영적인 체험입니다.
2. 제가 회개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절) 욥의 두 번째 고백입니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는 것은 가장 극한의 회개입니다. 욥이 이토록 애통하게 회개하는 것은 스스로 온전하게 살았다고 자부해 온 교만과 무지에 대한 것입니다. 욥의 마음에 임재한 하나님의 말씀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 그를 충격에 빠지게 했고 욥의 마음이 녹아내리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네가 좀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하자. 고아들의 아비가 되고 빈궁한 자들의 보호자가 되었 다고 하자 그런데 그 착한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이며 그 능력은 누가 준 것 이냐? 누구보다 정직하고 의롭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일생을 살았다면 그 삶의 능력은 또 어디서 온 것이냐?’고 추궁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께서 주신 것이요, 모든 것이 은혜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데 뭘 자랑하고 교만하냐는 것입니 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은혜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도 필요하고 긍지도 높아야 하고 자존감도 충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면 그는 신앙인은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이루었고 내가 의로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룰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가도록 도우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교만하고 하나님 영광을 가로챈 것들에 대하여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3. 회복의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욥이 회개하고 겸비해지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고백하는 믿음으 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10절) 하나님 께서 회복시켜주신 이 갑절의 은혜는 감당 못할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그런데 욥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명예의 회복이었습니다. 존경 받았던 경건한 욥이 완전한 이중인격자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전락되 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십니다.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8절) 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친구들에 대하여 노하거나 질책하지 않았고 분노로 그들에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욥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그의 의로움을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심으로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십니다.
회복이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끝까지 주 님의 뜻을 따르고 주님의 방법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 입니다. 우리 모두가 회복의 비전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이 비전을 가진 사람은 온유합니다. 노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의지하며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며 주님의 길만 걷습니다.
귀로 듣기만 하는 신앙생활에서 내 삶 속에 임재 해 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 신앙으로 믿음이 성숙해져 회복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