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기독교 (1) - 3.1운동의 원인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3.1운동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제헌헌법 전문은 “기미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우리나라’의 출발점이다. 일제에 강제병합되기 직전 이 나라의 이름은 대한제국이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은 표면적으로는 글자 하나가 바뀐 것에 불과하지만 그 뜻은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이 임금이나 황제가 아니라 ‘우리’라는 위대한 선언이다. 5천 년 만에 처음, 이 나라가 ‘우리나라’가 된 것이다.
흔히 3.1운동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으로 촉발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잘 알다시피 3.1운동 한 달 전 일본 도쿄에서 2.8독립선언이 있었다. 그런데 이 2.8독립선언의 주역 중 한명인 서춘의 발언은 당시의 한국인이 민족자결주의 하나만을 믿고 독립을 꿈꾼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만일 미국의 주의가 참으로 정의 인도, 자유 평등한 것이라면 무슨 이유로 필리핀을 독립시키지 않느냐. (…) 오늘날 우리 청년동포 중에는 미국 대통령의 선언을 존중하여
민족자결주의, 정의 인도, 자유 평등을 말하며 득의양양하기도 하나 이보다 더 심한 잘못은 없을 것 (…) 국가로서 단체로서 실력이 없다면 하등 이득이 없는 말이다.”
서춘의 이 발언은 당시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었다. 당시 서구는 1차 세계대전의 결과인 이른바 ‘베르사유 체제’라는 변화된 세계질서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질서가 말하는 민족자결의 권리는 강대국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말로는 모든 민족에게 자결의 권리가 있다고 하였지만 이러한 이상은 현실정치에 반영되지 않았다. 식민국의 독립도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는 독립되거나 승전국에 이양되었지만 러시아를 제외한 승전국의 식민지는 독립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은 승전국의 일원인 일본의 식민지였다.
그러면 당시 한국인들은 어떤 희망과 각오를 가지고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였을까. 2.8독립선언의 리더인 최팔용은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여기에서 ‘썩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사람이 옳은 일을 추구하며 이를 실천할 때 후세에 계속 기억되어 영원히 살아가는 제2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왜 조선이 독립하여야 하는가.’ 2.8독립선언의 청년들은 다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었고 옳은 일을 위해 죽을 때 썩지 않는 생명을 얻을 것이라 여겼다.
1919년 5월 발표된 ‘미국기독교연합회 동양문제위원회의 3.1운동에 관한 보고서’(The Korean Situation) 역시 3.1운동이 민족자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 보고서는 3.1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민족자결주의나 고종의 사망이 아니라 다음의 12가지 이유라고 설명하였다.
“(1) 한국인의 독립에 대한 갈망 (2) 일제의 엄한 군정과 횡포 (3) 민족성 말살의 기도 (4) 사법기관이나 행정기관에서의 한국인 배제 및 차별 (5) 임금?교육?법 적용에서의 한국인 차별대우 (6)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박탈 (7) 종교의 자유 제한 (8) 한국인의 해외여행과 유학 금지 (9) 비옥한 토지의 약탈 (10) 공창제도 및 마약 방임 등 한국 청년의 비도덕화와 퇴폐풍조 조장 (11) 만주에의 한국인 강제이민 (12) 일본인을 위한 개선과 한국인에 대한 착취" 등
요약하자면 당시 한국인들은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독립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구한말부터 근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펼친 이래 독립협회, 상동청년회, 신민회(105인 사건), 신한청년당으로 민족운동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민족운동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 중 하나였는데 이는 꽤나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대부분의 식민지가 기독교 국가인 서구의 지배를 받은 반면 우리는 기독교 선교국(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과 제국주의 침략국(일본)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18년 상해에서 결성된 신한청년단(新韓靑年黨)은 대한독립?사회개조?세계대동을 목표로 하는 단체로 주요인사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 신한청년단은 2.8독립선언을 촉진하고 국내 기독교 인사들에게 세계정세의 현황과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면서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와 조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종전과 맞물려 민족자결주의가 세계질서의 전면에 등장하자 한국인들은 이 변화의 조짐을 놓치지 않았다. 더구나 기독교인에게 자주(自主)와 인간다운 삶은 하나님이 성서에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기본이었다.(이사야 65:17-25) 한국교회에 카이로스(καιρ??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