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기독교 (3) - 기여와 의미
3.1운동은 한국기독교 초기 민족운동의 절정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3.1운동에 비견될 만큼 기독교가 민족사에 기여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많은 학자들은 3.1운동에서 한국기독교의 기여를 크게 두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첫째는 운동의 네트워크 제공이고 둘째는 사후의 수난 감내이다.
3종교가 민족운동의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은 여러 식민지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체로 종교는 마지막까지 식민지배 세력이 장악하기 어려워하는 사회적 조직체이다. 따라서 종교조직은 식민권력의 눈을 피해 민족운동을 추진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곤 한다. 나치 독일의 식민지배하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족운동이 정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그 일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할은 식민지배 세력의 주류 종교와 가장 거리가 먼 종교가 맡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크라이나의 정교회는 루터회를 국교로 하는 나치 독일의 치하에서는 민족운동의 중심이었지만 같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자 그 역할을 상실하였다. 3.1운동이 민족종교인 천도교와 서양에서 새로 유입된 기독교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주류 종교인 신도와 두 종교의 문화적 종교적 세계관이 상극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로회의 총회 → 노회 → 시찰회 → 당회로 이어지는 조직망, 감리회의 연회 → 지방회 → 구역회로 연결되는 조직망은 3.1운동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채 진행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여기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이 전국에 포진해 있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3.1운동의 정보가 한국교회의 조직망을 통해 전국으로, 그리고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만세운동이 있었던 지역 중에 주동세력이 뚜렷한 지역은 311개로 압축되는데 이 중 기독교 단독이 78개 지역, 천도교와 합작이 42개 지역이다. 25-38%의 지역에서 기독교 주도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정보와 사람의 통로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기여인 사후의 수난 감내는 실패의 대가를 누가 치르는가의 문제이다. 3.1운동이 성공인가 실패인가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긴 역사의 호흡으로 보면 3.1운동은 세계가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을 뿐 아니라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되었다. 대단한 성공이다. 하지만 짧은 호흡으로 보자면 민족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성난 일제의 탄압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일제는 3.1운동을 불온한 한국인들의 소요사태로 인식하고 살벌한 보복 학살과 주동자 색출을 이어갔다. 이렇게 보면 3.1운동은 실패라 할 수 있다.
실패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일제는 3.1운동의 주동 세력의 하나로 기독교를 지목하였다. 수원의 제암리교회, 인근의 수촌리교회와 화수리교회, 평남의 강서반석교회와 맹산교회, 만주의 노루바위교회 등은 모두 일제의 보복을 받았다. 기독교가 주된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피검자 통계로도 증명된다. 당시 체포된 사람의 22%, 투옥된 사람의 17%가 기독교인이었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3-1.5%에 불과했다.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던 천도교의 피검자가 2,268명인 반면 기독교 피검자는 3,065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기독교인을 상대로 한 집중적인 체포와 투옥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치이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한때 한국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모두 1907년의 대부흥으로 신앙이 개인화?내면화되면서 한국교회의 몰역사적이고 비민족적인 성향이 강화되었다고 보았던 적이 있었다. 낡은 역사 해석이다. 그런 시각으로는 12년 뒤에 일어난 3.1운동에서 한국교회가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 또한 민족대표에 참여한 기독교 인사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민족운동가로 활동해오던 사람보다 전적인 종교 지도자로 분류되던 목회자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을 단순히 사회참여 신앙과 개인구원 신앙으로 양분화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날수록 세상에 대한 책임감, 불의에 대한 저항의지, 이웃을 위한 희생정신이 강해지는 법이다. 3.1운동과 기독교의 관계는 신앙으로 무장한 기독교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이야 어찌되던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만이 곧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는 것일지 모른다.